증권회사의 추억

2022. 1. 26. 07:48일일단상/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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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인중개사시험 공부를 하다가 아주 가끔 공부가 지겨워질때 일본의 드라마 중 '아이보(파트너)'라는 드라마가 유명하다고 하여 어둠의 경로(?)를 통해 다운받아서 몇 편 본 적이 있었는데 별 시덥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라 재미도 없어서 보다가 말았는데 그 중에 한 가지 에피소드는 머리속에 기억이 강렬히 남아서 그 썰을 공개할까 한다. 

 

해당 헤피소드에서는 어떤 경찰관이 등장하는데 그 경찰관이 과중한 업무가 겹치면서 근무 중 실수로 응급환자를 제때 돌보지 못해서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환자가 사망한 것이 경찰관의 직접적인 책임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사망에 이르게 된 데에 어느 정도 간접적인 책임은 있었던 것이었는데 경찰 수뇌부에서는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경찰 위신이 추락할 것을 염려하여 감추려 든다. 결정적으로 해당 경찰관이 근무했던 지서장이 엘리트코스를 밟고 있던 자였는데 내부에서 그런 사건이 터질 경우 자신의 승진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므로 해당 경찰관을 함구시켜버리고 내부적으로 없었던 일처럼 장부를 조작하고 꾸민다. 이 것을 주인공인 형사가 밝혀내어 해당 경찰관은 해직되고 지서장은 좌천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해직된 경찰관이 억울해하면서 주인공에게 가서 따지는 씬이 나오는데 인상깊게 보았다. 경찰관이 주인공에게 '너 때문에 나 해고됐다'고 억울해하자 주인공은 '당신은 새 삶을 살 기회가 온 것이고 이제 공직에서 자유로워졌으니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다독여주며 이야기가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마치 주인공인 스기시타씨가 내게 들으라고 들려주는 말처럼 들려서 인상깊게 남았다. 사실 대기업(정확히는 대형 증권사)에서 15년 이상 장기근속하다가 하루아침에 퇴사하게 될 경우 미래가 정말 막막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래서 주변에 원망하는 마음도 많이 들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산더미같았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니 다 이것들 모두 다 허망한 짓거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원망하는 마음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내 미래만 더 어두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어떤 긍정적인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속 주인공이 얘기했든 퇴직이 진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재는 증권회사 다니던 시절보다 수입이 크게 줄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자유롭게 내 주관대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므로 이제는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어차피 증권회사는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래 다닐 곳이 못 된다. 증권회사는 그냥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기꾼들이나 우글거리는 곳이라고 보면 별로 틀리지 않다. 증권회사에서 승진하고 싶으면 어느정도 실력은 있어야 하지만 그에 걸맞게 아부와 능첨도 출중해야 하며 양심은 길바닥에 버려야 한다. 내 경우는 너무 양심적(?)이라 그런지 내가 팔았던 금융상품이나 펀드로 손실이 났던 고객에게는 개인 돈으로 변제를 대부분 해줬다. 대부분의 다른 증권회사 직원들은 고객에게 펀드를 권할 때는 간까지 다 내줄 것처럼 웃는 낯으로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대며 팔아대지만 정작 팔았던 펀드에서 손실이 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싹 얼굴을 닦고 모른 체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혹은 미안한 척 하지만 절대 변상은 해주지 않는다. 사실 손실은 어차피 투자자에게 귀속되므로 내가 권유해서 판매했던 펀드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어떠한 법적인 책임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런 증권회사의 속성은 어쨌든 내게는 잘 맞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별로 좋지도 않은 상품에 수수료만 비싸게 붙여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팔아먹는 펀드는 팔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승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얼굴에 철판깔고 펀드팔이 노릇을 해야 했으니 언제나 괴로웠다. 주식매매 역시 수수료 때문에 굳이 매매하지도 않아도 될 주식을 억지로 매매를 권유하느라 양심을 속여야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어서 지점에 있을 때는 솔직히 매일 퇴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즉,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밥먹듯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증권업계라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혹시라도 내가 권유해서 판매한 펀드에서 크게 손실이 날 경우 좌우지간 고객께 미안한 마음이 크게 앞섰다. 

 

그래서 그렇게 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어찌보면 참으로 멍청한 짓이기도 하지만 내 양심상 도움을 주신 분들을 모른체 하고 있기가 참을 수 없어서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내가 추천드렸던 금융상품에 가입하여 큰 손실을 봤던 고객분들께는 재직중에 대부분 개인적으로 변제를 해드렸다.

 

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는 증권업계는 근본적으로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아주 얄팍한 생각을 가진(=비정상적인)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곳이고 별다른 인생의 건전한 철학이나 가치관을 가진 인간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라 정상적인 사람들은 별로 없고 한마디로 수준이 한참 낮은 인간들이나 우글대는 곳이다. 즉, 정상적인 생각회로를 가진 사람이 결코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이 못 된다. 

 

지금 생각해봐도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퇴직금 좀 받고 일찍 나온 게 잘한 일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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